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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ympus E-1

원래 Olympus E-1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주제로 포스팅을 하고 나중에 쓸 계획이었는데, 어제자로 올림푸스한국이 국내 카메라 사업을 곧 접을 거라고 발표하는 바람에 앞당겨서 글을 적게 됐다.

Canon PowerShot G2로 한창 사진 찍던 즈음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DSLR로 카메라를 바꾸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나는 한동안 꿋꿋하게 G2로만 열심히 사진을 찍었더랬다. 그러다가 2004년도에 우연히 누군가가 SLRCLUB에 올린 E-1 사용기를 보게 되었는데 이게 사진 색감이 너무나 내 취향인 거다. 그래서 남들은 당연히 Canon이나 Nikon, 아니면 Pentax 같은 유명한 브랜드를 선택하는 마당에, 맥을 첨 살 때 처럼 별다른 이성적 고민없이 마이너중 마이너인 Olympus로 첫 DSLR 카메라를 선택하게 된다.

그 당시 Olympus는 Kodak과 함께 기존의 35mm 필름 포맷과 전혀 상관없이 디지탈 시대에 발맞추어 4:3 화면 비율과 2배 환산화각 기반의 포서드 규격을 발표하고 곧 이어서 첫 렌즈교환식 DSLR인 E-1을 야심하게 발표한다. 이미지 센서로 Kodak의 500만 화소 포서드 전용 센서를 사용했는데 그 당시 캐논, 후지필름은 자사 센서, 니콘, 미놀타 등은 소니 센서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카메라 중에서는 유일하게 미제(?) 센서를 사용한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Olympus 튜닝이 곁들여져서 희석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피는 못속이는 법이라고, 필름으로 잔뼈가 굵은 Kodak의 이미지 센서 덕분에 다른 브랜드와는 결이 전혀 다른 특유의 유화틱하고 진득한 색감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나름 플래그쉽 기종이었던 관계로 완전한 방진방습과 함께 카메라 만듦새 하나 만큼은 캐논, 니콘의 최상위 기종과도 가히 견줄만한 수준이었다.

 

Olympus E-1 Official Image

하지만 장점보다는 사실 단점이 더 많은 카메라였는데, 왜냐하면 Olympus는 필카 시절 MF 기반 SLR인 OM 시리즈(나름 명품임)만 만들어 본 회사였기 때문에 캐논, 니콘, 미놀타(이후 소니가 인수)와는 달리 제대로 된 위상차 AF 원천 기술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AF 측거점이 달랑 3개 밖에 없었던 데다가 AF 성능 마저도 다른 브랜드의 보급기 정도가 겨우 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AF가 맞을 때 측거점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비프음만 가지고 판단해야 했다.

그리고 Kodak 센서는 양날의 검이었는데 색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지만 고감도 노이즈가 정말 어마무시했다. 그러다보니 사실상 ISO 400이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해야만 했다. 포서드 규격의 센서 사이즈는 일반적인 APS-C 규격의 1.5배(또는 1.6배) 크롭 대비 좀 더 작았는데, 아무래도 사이즈가 작다보니 물리적 한계 때문에 노이즈가 더 심할 수 밖에 없는 데다가 Kodak 센서가 워낙 노이즈로 악명 높았던 터라 거의 환장의 콜라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포서드 규격이 신생 포맷이다 보니 전용 렌즈군이 빈약해서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그래도 포서드 규격에 몇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센서가 작다보니 렌즈 사이즈를 좀 더 작게 만들 수 있다는 것과 함께 2배 환산화각이다보니 배율이 단순해서 머리가 나쁜 나같은 사람에게는 화각 계산에 유리했다. 아무래도 렌즈 촛점거리에 1.5나 1.6을 곱하는 것보다는 2배를 곱하는게 머리에서 훨씬 계산이 빨리 되니까... 그리고 E-1과 같이 발표되었던 Zuiko Digital 14-54 렌즈(28-108 화각)는 다른 브랜드의 최고급 렌즈까지는 아니었지만 전천후로 사용하기가 참 좋은 만능 렌즈였다. 

Olympus가 위상차 AF 기술은 좀 후달리긴 했지만, 나름 공돌이 감성이 충만한 회사라 세계 최초로 시도한 것들이 꽤 있다. 초음파로 센서에 붙은 먼지를 제거하는 기술, 라이브 뷰, 전자식 뷰파인더, 5축 손떨림 방지, 미러리스 등. 하지만 다른 회사들이 특허를 피해서 교묘하게 카피한 뒤에 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관계로, 결국 죽쒀서 남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 되고 말았다.

Olympus 카메라가 일본 내수 시장에서는 그래도 좀 팔리는 편이라 아직 카메라 사업 자체를 완전히 접을 것 같지는 않지만,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아무래도 마음 한켠이 좀 허전하고 아쉽다.

2004년에 구매해서 2015년도까지 거의 12년 가까이 사용했으니까, 내 인생 1/4의 시간과 추억을 E-1으로 담은 셈이다. 여행지마다 항상 나와 함께 했었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서도 끄떡없이 느릿느릿하지만 우직하게 추억을 남겨준 믿음직한 녀석이었다. 색감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서 Canon PowerShot G1과 함께 지금도 가끔씩 그리워지곤 하는 카메라이기도 하다.

참고로, Olympus E-1의 한국 CF가 그 당시 기준으로 초고퀄이라 꽤 화제가 되었었다. "당신의 사진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사막 안으로 충분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라는 멘트와 함께 울려 퍼지는 헨델의 Ombra mai fu 까지 참 감성 돋았던 기억이 난다.

내 첫 DSLR 올림푸스 E-1. 
안녕, 예전에 너와 함께했던 시간들 참 즐거웠어...

 

Australia 2009.12

OLYMPUS E-1과 함께 했던 사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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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eaka Summit, Maui, Hawaii 2011.11

OLYMPUS E-1과 함께 했던 사진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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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2011.06

OLYMPUS E-1과 함께 했던 사진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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