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usic/k-pop

내게 침을 뱉어 줘, Agust D (or BTS SUGA) - 대취타

내가 태어나기 6년전인 1969년도에 영국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서울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을 하게 된다. 그 당시는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 정권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인지라, 내가 자란 유년기보다 아마도 사회적으로 더 보수적인 시기였을거라고 추측된다.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 공연이 끝나고 그 당시로는 꽤나 충격적인 소문이 세간에 널리 퍼지게 되는데, 공연 도중 흥분한 여성 팬들이 자신의 속옷과 팬티를 벗어서 무대 위로 던졌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말세라며 혀를 찼고, 이 무용담은 세월이 지나도록 구전되면서 특정 가수의 열혈 팬이 된 자식 세대들이 부모 세대들에게 '당신 때는 우리들보다 더하지 않았냐.'는 항변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나도 이 사건을 처음 듣고 '어머니뻘 정도 되시는 분들이 꽤나 화끈하셨구만.' 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 당시 공연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는 꽃과 손수건, 보자기 정도를 무대 위로 던진 것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 오랫동안 팝 음악의 본고장인 영국과 미국의 팝 음악은 우리에게 머나먼 동경의 대상이었지 감히 정복의 대상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후 약 50년의 세월이 흘러, K-Pop 아이돌인 BTS의 Dynamite가 빌보드 싱글 챠트 정상을 차지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바다 건너 일본인들은 도통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한국인들의 조작일지도 모른다는 둥 시기섞인 질투를 보내고 있지만, 이토록 스스로 거대한 흐름을 부정할수록 점점 더 초라해지는 J-Pop 아이돌의 현실만 마주 보게 될 뿐이다.

일전에 뮤지션이 음악적인 정점에 오르기 전에 그 전조(Omen)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쓴 적이 있다. 응축된 에너지가 정점에서 분출되기 바로 직전의 징조들이 있게 마련이라는 의미이다. Dynamite의 업적에 다소 묻힌 감이 있지만 앞서 올해 5월 22일에 발표된 Agust D(BTS 래퍼 슈가의 솔로 활동명)의 단독 솔로 앨범인 'D-2'의 수록곡 '대취타'가 빌보드 200 챠트에서 11위까지 오르게 되는데, 이미 이쯤 되면 이후 3개월 뒤 발표될 BTS의 Dynamite가 노래 제목 그대로 얼마 만큼의 폭발력을 지닐 지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대취타'는 BTS 슈가가 팀 컬러에 맞추느라 그간 감춰 둔 정통 힙합 뮤지션으로써의 역량을 제대로 발산하는 곡으로 오래전 서태지 '하여가'의 뒤를 잇는, 한층 더 심화된 국악과 K-Pop의 절묘한 화학적 결합을 보여주고 있다. 힙합 장르 기반의 하드코어한 트랩비트 위에서 과감하고 단순한 One 코드로 시종일관 곡이 진행되는데, 귀를 자극하는 태평소 소리에 맞춰 마치 춤을 추듯 변화 무쌍하게 변조되는 플로우와 완벽한 완급 조절(대표적으로 영상 2:44 지점) 덕분에 이 곡이 오직 하나의 코드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기 힘든 수준이다. 게다가 아이돌 출신 래퍼를 무시하던 주류 힙합 뮤지션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가히 가공할만한 수준의 빡셈과 살벌함, 이를 뒷받침하는 퀄리티는 이미 기본 중의 기본이다.

뮤직 비디오 중간에 보면 Agust D가 카메라 정면을 향해 침을 뱉는 장면(영상 2:30 지점)이 나오는데, 서구권의 많은 여성 팬들이 ‘대취타’ 리액선 유튜브 영상중 그 장면에서 거의 반사적으로 '내게 침을 뱉어 줘!(Spit on me!)'라고 외치는 걸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그동안 서구권 여성들이 동양 남성들에게 그다지 섹스 어필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기 힘든 장면이기 때문이다. 비록 과거 클리프 리처드 내한 공연 때의 팬티 투척 사건은 진실이 아닌 거짓 헤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지금의 BTS는 현재 진행형으로 더이상 거부하기 힘든 진실이다.

Agust D - D-2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