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모르겠지만, 나는 어머니의 권유로 초등학생일 때 속독법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나름 동네 번화가에 위치한 속독법 학원은 원장만이 그 곳의 유일무이한 선생님이었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안광은 내 뒤통수 너머 벽까지 뚫을 기세였다. 그래서 아직도 그 눈빛만큼은 기억이 뚜렷한데, 나중에 TV에서 보이던 사이비 교주나 무속인에게서 그와 비슷한 눈빛을 발견했던 것 같다.
거기서 배웠던 것들은 사실 지금 떠올려 보면 좀 기이한 것들 투성이였다. 예를 들면 검지 손가락을 얼굴 양 옆에 세우고 눈알을 좌우로 빠르게 굴려 손가락 끝을 번갈아 바라본다던지, 시선을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이동하며 사선으로 한 페이지를 본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그 중 으뜸은 양궁 과녁지가 그려진 종이의 중심부를 촛점이 가물거릴만큼 수분동안이나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었는데, 그 과녁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 있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 정신을 한 곳으로 하면 무슨 일인들 이루어지지 않으랴
요즘 말로는 ‘노오오력’에 가까운 그 말을 그 시절의 나는 덥석 믿었었고, 덕분에 매 수업마다 눈을 크게 뜨고 과녁지를 노려봤으며 눈알을 좌우로 제법 재빠른 속도로 굴려 댔다. 물론 어떤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건 결국 안되더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건 주민등록상 어른이 되기도 훨씬 전이었지만 말이다.
속독법을 배우고나서 책을 정말로 빨리 읽게 되었다거나 하는 그럴듯한 결말은 오지 않았던 것 같다. 내게 남은 것은 선생님의 강렬한 눈빛과 의외로 지금까지 마음의 평안에 도움이 되는 ‘마음 속으로 초시계처럼 시간을 세는 방법’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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