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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전자 IQ 2000 (CPC-300)

내 첫 컴퓨터는 바로 일본 ASCII사에서 제시한 8비트 MSX 2 규격을 따르는 대우전자의 IQ 2000 (CPC-300) 이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부모님께서 사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새로운 컴퓨터를 전혀 구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들이 대부분 16비트 IBM 호환 컴퓨터를 사용하던 시절에도 거의 9년 가까이 이 컴퓨터를 사용했었다.

CPU로 자일로그사의 Z80A(클럭 스피드 3.58MHz)를 사용했었고, 다양한 화면 모드를 지원하는 자체 비디오 프로세서인 VDP(Video Display Processor)를 내장해서 동 시대 기종들(Apple II 등) 또는 이후 나온 기종들 중에서도 그래픽 성능이 단연 돋보였다. 그리고 3개의 음을 동시에 출력할 수 있는 사운드 칩도 내장되어 있어서 게임을 위한 최적의 환경은 모두 갖춘 셈이었다. 다만 대우전자 제품만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키보드 접점 불량 때문에 알콜로 키 접점을 자주 닦았던 기억이 있다.

초기에는 전용 테이프 레코더에 카셋트 테이프를 구동해서 게임 프로그램을 로딩하는 방식을 사용했었는데(CLOAD, BLOAD 명령어), 게임 로딩이 에러없이 성공하려면 볼륨이 가장 크게 들리는 헤드 위치를 맞춰줘야 한다. 그래서 매번 테이프 레코더의 드라이버 구멍에 십자 드라이버를 끼워 넣고 조절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펼쳐지곤 했다. 그 이후에 용량이 늘어난 메가롬팩 규격이나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등이 본격적으로 지원되기 시작하면서 용량의 한계를 벗어난 MSX 2용 게임 들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게 된다.

일본 규격의 컴퓨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 게임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아무래도 서양 게임보다는 한국 취향에 더 맞아서 국내에서도 게임용으로 엄청난 유명세와 인기를 누렸었다. 그 유명한 코나미사의 메탈기어, 그라디우스, 악마성 드라큐라, 불새, 마성전설, 몽대륙, F1 Sprits 등의 명작과 팔콤사의 Ys, 드래곤 슬레이어 6 영웅전설(원작이 드래곤 슬레이어인데 본작이 히트치면서 아예 영웅전설로 시리즈명이 바뀜), 코에이사의 삼국지, 신장의 야망, 지금은 망해서 없어진 컴파일사의 Zanac, Aleste, 마이크로캐빈사의 Xak 등 몇몇 게임은 지금까지도 시리즈로 꾸준히 이어지는 작품 들이 줄을 지어 MSX용으로 출시되었다. 덕분에 난 친구들과 함께 학창시절을 게임에 완전히 푹 빠져 지내게 되었고, 급기야는 부모님께 금지령을 받아 한동안 컴퓨터가 봉인된 적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MSX Basic(그 유명한 Microsoft가 만듦)을 기반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꽤 유치하고 단순한 5 라운드 대전 액션 게임을 직접 만들었었다. MSX 2의 경우 특수 문자에 비트맵 패턴을 입혀 사용할 수 있었는데, 비트맵 노가다를 통해 원하는 게임 캐릭터 들을 만들고, 거기에 직접 만든 효과음과 음악도 직접 삽입해서 꽤 열심히 프로그래밍을 했었다. 물론 Basic 언어 특성상 지금은 거의 금기 시 되는 GOTO문 투성였지만... 그리고 그 당시 유명했던 컴퓨터 학습이라는 잡지에 이 게임을 기고해서 소정의 원고료도 받았던 나름 뿌듯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중학교 때는 한참 유행하던 테트리스를 MSX용으로 구현한 적도 있지만 아쉽게도 이 게임은 잡지사에서 퇴짜를 맞았다.

추억 보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IQ 2000 시절의 MSX 2 게임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나름대로 작품성도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분명 지금 내가 가진 덕력의 상당 부분은 이 MSX 2 게임 들이 꾹꾹 눌러 채워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끔 아릿할 때가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grijoa.blogspot.com/2006/03/msx.html?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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