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면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함께 해왔던 MSX 2대신 새로운 두번째 컴퓨터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컴퓨터 잡지 뒷면에서 아주 예쁘게 생긴 무지개 사과 로고의 컴퓨터 지면 광고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게 바로 Apple Computer의 Macintosh LC 475였다. (지금은 Macintosh라는 풀네임 보다는 주로 Mac이라는 애칭으로만 부르는 듯) 피자 박스처럼 얆은 본체와 그 당시 화질 좋기로 유명한 SONY 트리니트론 CRT를 사용했던 애플 14인치 모니터, 그리고 캐논 버블젯 방식의 애플 스타일러스 2 프린터까지 풀셋트를 그 당시 돈으로 꽤 거금을 들여 구입하게 된다.
CPU로는 그 시절 인텔과 나름 경쟁구도였던 모토롤라에서 개발한 32비트 CPU인 MC68LC040(25MHz)을 사용하였고 원가 절감을 위해 부동소수점 연산을 위한 FPU가 내장되어 있지 않다보니 포토샵이나 3D 프로그램 등에서 특정 기능을 실행할 때 오류가 나곤 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명했던 종로 맥 센터에서 추가금을 들여 FPU가 포함된 MC68040으로 업그레이드 하기도 했었다. 대략적인 성능은 인텔의 486과 유사하다고 보면 되지만 최고 클럭이 높지 않았던 관계로 성능면에서는 인텔에 비해 다소 떨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16비트 시절은 건너 뛰고 8비트에서 바로 32비트로 넘어간 셈인데, 그 당시 가장 보편적이었던 MS-DOS를 경험하지 않고 GUI 형태의 혁신적인 운영체계였던 System 7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MSX 2에서 디스크 관리를 위해 사용하던 MSX-DOS가 MS-DOS와 매우 유사해서 MS-DOS 기본 사용법 정도는 알고 있지만 나름 컴퓨터 좀 한다는 친구들이 흔히 자랑하던 복잡한 메모리 설정 등은 덕분에 난 전혀 알지 못한다.) Sytem 7은 Microsoft의 야심작인 Windows 95가 발표되기 전까지 주류를 이루었던 텍스트 기반의 운영체계나 단순 껍데기에 불과했던 Windows 3.1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그래픽 기반의 사용자 환경을 제공했었다.
다만, System 7의 멀티태스킹 방식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OS 중심의 선점형 멀티태스킹 방식이 아니고 어플리케이션이 모든 자원을 사용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어플리케이션 내에서 메뉴바를 누르고 있으면 백그라운드 작업이 중단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면 그 당시 주로 사용하던 2400bps 모뎀으로 파일을 다운로드 하는 도중에 메뉴바를 오래 누르고 있으면 다운로드 오류가 발생하는 황당한 일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는 System 9 까지도 전혀 수정이 되지 못하다가, Apple에서 방출되었던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가 Apple Computer에 다시 복귀하면서 Next Computer 시절에 개발했던 Nextstep 운영체계를 기반으로 전혀 새로운 방식의 MacOS인 OS X 첫 버전을 발표한 후에야 비로소 해결된다.
사실 과내 동기들이 그 당시 주로 사용하던 컴퓨터는 당연히 IBM 호환 PC가 압도적이었는데, 이성적으로 구매를 결정한게 아니고 단순히 디자인 만으로 Mactintosh를 선택한 댓가는 꽤나 혹독했다. 대학교 시절 쏟아지는 컴퓨터 공학 전공 과제 들을 맥으로 제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고 결국 컴퓨터실의 IBM 호환 PC를 빌려 Turbo C 나 Borland C++을 이용해서 과제를 수행해야만 했다.
여담으로 그 당시 Apple Computer의 한국 리셀러는 엘렉스 컴퓨터라는 중소 규모의 회사였는데, 지금의 애플 코리아는 선녀로 보일만큼 매우 악명이 높았다. 특히 OS에 기본 탑재되던 한글 입력기에 하드웨어 기반의 락을 걸어 놓아서, 키보드와 본체 사이에 흉물스런 덩글키(한글키라고 불리우던)를 연결해서 사용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래서 엘렉스 컴퓨터의 악행에 치를 떨던 유저들은 Apple이 한국에 공식 진출하길 간절히 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애플 코리아가 들어와 있는 지금의 현실은...
이 Macintosh LC 475를 시작으로 나와 Apple의 아주 오랜 인연이 시작되었다. 맥이 어느정도 보편화된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 맥 유저들은 유니크하고 재능 넘치는 사람들(전문직, 예술가, 음악인 등)의 비율이 매우 높았는데 덕분에 대학시절 내 인생에서 두번 다시 만나기 힘든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내 시야를 넓혀준, 귀중한 시절을 함께 한 컴퓨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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