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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George Michael - Father Figure

“안녕하세요!”

집에 들어선 낯선 사내가 당당한 표정으로 어머니께 꾸벅 인사드렸다. 살짝 광이 나는 구리빛의 넓은 이마, 나를 뚫어보는 듯 세상을 향해 돌출된 부리부리한 눈. 내가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의학의 힘을 굳이 빌리자면 그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태양인’의 관상이었다.

어머니는 지인으로부터 경희대 한의학과 학생인 그를 소개받았고 나의 고등학교 시절 사교육, 그러니까 개인 과외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재수를 통해 본인이 원하던 대학교와 전공에 합격한 그는 좌절을 모르는, 매사에 긍정적인 사내였다.

간혹 내가 수업에 지루해 하는 티를 낼때면 그는 어김없이 본인의 자가용으로 시내 드라이브를 시켜주었다. 조수석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내게 가끔씩 수동 기어를 직접 조작해보라며 기어봉을 넘겨주곤 했지만 서투른 나는 항상 타이밍을 놓쳐 차가 덜컹거렸다.

그의 수동 엑센트 차안은 MC 해머나 죠지 마이클 처럼 그 시절 팝음악이 흘러 나왔고 나 또한 그 음악들이 좋았다. 그 중에서도 내 귀를 사로 잡았던 건 죠지 마이클의 ‘Father Figure’. 내가 앨범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처 제대로 감상하지 않았던 노래였다. 그 곡이 인상적이었던 건 가사와 딱히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가스펠 풍 코러스와 분위기가 왠지 암울한 내 사춘기를 잠시나마 구원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였을까.

그렇게 꽤 오랫동안 마치 형처럼 나에게 친절했던 그는 차갑게 돌변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수업 시간마다 냉정한 표정으로 나를 비난하기 일쑤였다. 딱히 성적을 올리고 싶다거나 삶에 대한 의지없이 그저 멍한 눈으로 시간만 때우던 고등학교 시절의 나란 존재가 그의 기준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겠지. 얼마 후 어머니께 다른 핑계를 대고 과외를 그만 둔 그는 내게 작은 작별인사도 남기지 않고 단숨에 사라졌다.

그랬던 그에게 아무런 아쉬움은 없었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 뒤돌아 보니 어쨌든 그는 노래 하나를 내게 남겨 준 셈이었고 정작 그에게 허무와 좌절을 건네준 쪽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George Michael - Faith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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