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조숙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3~4학년 즈음 죽음에 대해 깊이 상상에 빠진 적이 있었다. 육신이 소멸되고 시커먼 심연 속에 영혼이 마침내 가라앉고 나면, 그 주변에는 어떤 존재의 인기척도 남아 있지 않아서 오로지 내 영혼만 남아 고독하고 절대적인 영원의 시간에 갇힌 것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막막하고도 갑갑한 감각이었다.
타인과 죽음의 여정을 나누는 장례라는 절차는 사실 철저하게 살아 남은 자들을 위한 위로의 의식이다. 이별의 끝이 아닌 이별의 시작이며 남은 자들은 때로는 형식적이면서 경건하기까지한 이 떠나 보냄의 과정을 통해 떠나간 이와의 추억들을 최대한 선명하게 각인하고, 흐르는 시간 속에 그 기억의 얼룩을 조금씩 헹구어 나간다.
일본 영화 굿’ 바이는 유명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던 주인공이 오케스트라의 해체로 순식간에 백수가 되면서 단순히 고소득의 유혹에 빠져 장의사(납관사)가 되는 것으로 출발한다.
첫 임무를 마친 후 몸을 빡빡 씻어댈 정도로 적응에 힘들어 하기도 하고, 아내에게 몰래 하던 일을 들켜 버린 뒤 불결하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지만, 사장은 주인공이 이런 저런 고충을 토로할 때마다 태연하게 “괜찮아(だいじょうぶ). 괜찮아(だいじょうぶ).” 라는 속 터지는 말만 연발한다.
그렇게 영영 장의사 일에 적응하지 못할 것만 같던 주인공은 사장이 유족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담아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점차 본인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한동안 연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서 그의 시신을 정성스레 닦고 단장해 주며 화해하는 과정들을 통해 ‘남은 자들을 위한 위로 의식’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된다.
죽음이라고 하는 얼핏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유머러스하면서도 담담한 터치로 그려낸 작품으로, 특히 사장이 곤란한 질문에 처할 때마다 선문답처럼 말하는 “괜찮아(だいじょうぶ). 괜찮아(だいじょうぶ).”는 웃음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후 뒤돌아서면 그 대사마저 여운으로 다가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음악은 일본 영화음악계의 거장인 히사이시 조가 맡았는데, 작품이 띄우고자 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적인 자세를 첼로의 잔잔한 선율에 실어 담담하고도 묵묵하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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