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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경양식 피아니스트, Steve Barakatt - Flying

지금은 거의 멸종하다시피한 ‘경양식’이라는 간판을 단 레스토랑들이 예전엔 꽤 있었는데, 한번은 친구와 길을 가다 몹쓸 호기심이 발동해서 저기 눈앞에 뵈는 경영식집을 한번 가보자고 말을 꺼냈다.

쭈뼛쭈뼛 식당에 들어가 웨이터가 전해주는 메뉴판을 펼친 후 두사람 모두 동공 대지진. 우리가 예상한 가격보다 0이 하나쯤은 더 붙어 있었다. 그냥 차라리 다음에 오겠다고 말하면 될 걸, 괜한 자존심에 쥬스 한잔을 주문하고 홀짝거리다가 나왔다.

그런데 경양식의 '경'이 '가벼울 경' 아니었나? 영어로는 'Light'인 것처럼.

아무튼 모닝빵과 후추 뿌린 스프, 우아하게 칼질할 수 있는 돈까스와 사라다를 곁들여 팔던 경양식 레스토랑은 김밥천국 돈까스와 전문 이탈리안 레스토랑, 패밀리 레스토랑 등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경음악'이라는 정체 불명의 카테고리도 있었다. 순수 클래식은 아니면서 보컬이 없는 연주곡 형태의 이지 리스닝 스타일을 한데 아우르는 표현이었다. 대표적으로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 같은 피아노곡을 그렇게 불렀다. 경양식과 마찬가지로 장르 구분이 세분화되면서 경음악이라는 모호한 표현도 점점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피아니스트 'Steve Barakatt'의 곡을 들으면 이런 류의 음악을 예전에는 '경음악'이라고 불렀겠구나 싶었다. 그의 음악은 일기예보, 비행기 기내방송, 백화점 개장음악 등으로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었는데, 특히 대표곡중 하나인 'Flying'은 아마 특정 시기의 사람들에게는 영어 듣기평가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곡이기도 하다.

데뷔 앨범 자켓에서처럼 젊은 시절의 그는 꽤 호리호리하고 곱상한 모습이었는데, 최근 모습은 나이와 함께 살이 붙어서 그런지 예전의 미모는 온데간데 없고 마치 IT기업에서 코딩 좀 할 것 같은(?) 고참 엔지니어스러운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물론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드는 연주 실력만큼은 다행히 여전하다.

Steve Barakatt - A Love Affair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