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즘 유투브 대세 '깡'으로 '놀면 뭐하니'에서 엄청나게 화제가 되고 있는 비에 대한 이야기.
2002년 우연히 TV에서 비의 '나쁜 남자' 데뷔 무대를 보게 되었는데 다크한 컨셉의 노래와 안무, 비주얼이 같은 남자가 봐도 너무 멋진 거였다. 개인적으로 데뷔 무대를 보고 충격에 빠진 한국 가수를 둘 꼽자면 하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였고, 두번째가 바로 비의 '나쁜 남자'였다. 사실 '난 알아요'는 중간에 튀어 나오는 취향 저격의 헤비메탈 리프에 꽂힌 거였고, 내가 K-Pop 댄스 가수를 보고 첫눈에 매료된 건 비가 처음이었다. 박진영에게 중저음의 보컬톤과 외모, 남성미가 더해진다면 마치 이런 느낌일 것 같은... 한마디로 박진영의 완성형 페르소나 같은 강렬한 첫 인상이었다. 그래서 절친에게도 비를 굉장히 칭찬했던 기억이 있다.
아쉽게도 내 기대와 달리 비의 데뷔곡은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안녕이란 말 대신'이라는 밝은 컨셉의 후속곡이 히트를 치면서 빛을 보게 되는데, 그 이후에는 내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난 포텐이 터지면서 대스타의 반열로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 한참을 잘 나가다가 우려스러운 소식이 들려 오는데 비가 JYP에서 독립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기대반 우려반으로 듣게 된 '레이니즘'. 지독히 자기애적인 가사와 JYP시절 대비 임팩트가 떨어지는 작위적인 댄스를 보고 내 우려가 빗나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지만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그나마 박진영의 유산이 남아 있던 독립 초기의 '레이니즘'은 대히트를 쳤고 그래도 이 시절을 비의 리즈시절로 보는 사람도 많으니 이 부분은 어쩌면 철저하게 개인적인 평가일 수 있다.
그리고 이후 나온 후속 곡들에서는 점점 더 망가져만 갔다. 비가 박진영의 하드웨어적인 페르소나였던 것처럼, 그의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채워줬던 박진영의 빈자리는 역시나 컸다. 게다가 비가 프로듀싱까지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망가지는 속도는 겉잡을 수 없이 가속화 되었다. 결국 그 종착역은 바로 유튜브에서 한껏 밈화되버린 '깡'이었다. 솔직히 나는 어느 순간 비에 대한 관심을 놓았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대세라는 '깡'까지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얼마전 관련 유튜브 동영상들을 몰아서 보고 한 때 멋짐의 대명사였단 비가 이렇게까지 대중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다행인 건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비가 거기에 상처받지 않고 현실과 비판을 쿨하고 유쾌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부정적인 의미이긴 하지만 이렇게 거대하게 밈화 된 것도 대중적 관심의 표현이니까 이 관심을 거꾸로 기회로 잘만 활용하면 엄청난 전화위복의 발판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비가 후속 곡에서 자기 고집과 프로듀싱에 대한 욕심을 철저하게 버리는 대신 누군가 그에게 트렌드에 맞는 제대로 된 컨셉과 컨트롤만 제공해 준다면 분명 제 2의 리즈 시절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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