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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k-pop

최유리 - 숲

#1987년

“쾅”

커다란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떠오른 친구의 차 안에서 그는 어머니의 마지막 음성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넌 왠일로 안나가던 동창회를 다 간다니?”

그런 어머니에게 씨익 웃으며 멋적은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던 그였다. 현관을 나서는 그의 왼손에는 포장을 뜯지 않은 카세트 테잎이 가득 담긴 종이백이 들려 있었다.

‘간만에 동창회를 나오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저 내 분신과도 같은 첫 작품을 동창에게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다.

잠시 후, 다시 ”쿵“

포니2 차체가 사납게 아스팔트 바닥을 긁으며 나를 잡아채는 순간 다른 미련이 떠올랐다. ’굳이 나를 태워 주겠다는 친구 녀석의 호의를 끝까지 거절했더라면…‘

동창회 술자리에서 나눠주고 남은 카세트 테잎들이 휘갈겨 그린 오선지의 음표마냥 소란스럽게 차안을 떠돌다가 흩어진다.

그저 잠시 감았다 뜨는 것인데 눈꺼풀이 한없이 무겁다. 눈에 비친 강변북로의 가로등 불빛이 점점 가늘어지더니 일시에 필라멘트가 터진 듯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2018년

진공으로 된 풍선 속에 있는 것처럼 숨조차 쉬기 버거워지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수 초의 시간이었지만 적막 때문에 무한히 늘어진 것 같았다. 얇은 막을 바늘로 터뜨리듯 사회자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축하합니다! 대상 최유리’

순식간에 공기를 가득 채운 박수 소리와 그의 주인을 쫓는 쨍한 조명 속에서 그녀가 오랜 잠을 깬듯 눈을 떴다.

기쁨과 놀라움으로 떨리는 그녀의 작은 두 손에 트로피가 쥐어진다.

그리고 트로피에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

’제 29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최유리 - 유영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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