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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에 남긴 위대한 유산, 유재하 그리고 지구에서 온 편지(by 김광민)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의 초겨울이던 1987년 11월 1일, 그 날 이후 거의 라디오만 틀면 흘러 나오는 음악이 있었다. 유재하의 ‘지난 날’과 ‘사랑하기 때문에’. 연인과의 결혼식을 1주일 앞둔 그 날, 유재하는 단 한장의 음반을 남기고 25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유재하의 1집은 이문세 4집과 더불어 내 스스로의 의지로 구입하기 시작한 거의 첫 음반이자 이후 내 청소년기를 지배했던 음악이었다. 앨범에서 상당수의 악기를 스스로 연주했다거나, 작사, 작곡 및 편곡까지 혼자 감당했다던 그의 천재성은 그 때 미처 알아보지 못했지만 순수음악 전공자 답게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접목한 작법, 담백하고 꾸밈이 없지만 왠지 세련되게 들리던 노래, 한편의 시와 같은 가사들은 그 시절 작은 소년의 마음을 커다.. 더보기
인사성과 성실함 앞서도 말했지만 성실하지 않다는 건 내게 가장 큰 불명예다. 아무리 덜떨어져도 인사 잘하고 성실하면 중간은 간다. 정작 어릴 때 들었을 때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가 삶을 통해 신뢰하게 된 명제다. 대개 인사성과 성실함은 관료적이고 수직적인 사회에서나 빛을 발하는 덕목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건 가장 끔찍한 오해들 가운데 하나다. 가진 것이 없을 때 저 두 가지는 가장 믿을 만한 칼과 방패가 된다. 타인을 가늠하는 데도 나를 무장하는 데도 좋은 요령이다. - 살고 싶다는 농담 (2020), 허지웅 - 더보기
뻔뻔함과 성찰 사이 살아가면서 점점 더 느끼지는 건, 삶이 적당하려면 뻔뻔함과 자기 성찰 사이의 절묘한 지점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계속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일종의 균형감각인 셈이다. 적절한 뻔뻔함은 자신에 대한 공격(여기서 공격 주체는 자기 자신까지 포함)으로부터 내면을 지키기 위한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다. 그렇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수시로 타인에 대한 선을 넘으며 서슴없이 주변에 해를 끼치는, 염치를 모르는 괴물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곤 한다. 반면 자아 성찰은 사람 고쳐 쓰는 법 아니라는 절망적인 속설처럼, 인간이 지닌 어마어마한 관성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여지를 남겨 주는 희망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이런 고귀한 능력도 일정 선을 넘어가면 본인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다치게 한다. ‘나는 원래 이런.. 더보기
푸른 눈의 재즈 - The Manhattan Transfer - The Offbeat of Avenues 메인 스트림 재즈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애시드나 퓨전처럼 변형된 장르의 일부 팀만 좋아하는 내가 추천하는 몇 안되는 재즈곡, 맨해튼 트랜스퍼의 The Offbeat of Avenues. 장르 상 보컬 재즈로 구분되는데, 악기 연주가 아닌 4인의 목소리와 화성으로 풀어내는 푸른 눈의 재즈가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노래를 듣자 마자 아마존에서 충동 구매해버린 앨범으로, 평소에 재즈를 즐겨 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흠뻑 빠질 만큼 매혹적인 팀이다. 이 곡의 하일라이트 구간은 3:30 지점부터. 더보기
공항가는 길 딱히 대단치는 않지만 할 것과 먹을 것 그리고 갈곳을 대략 정리해 둔 스케쥴표, 미리 출력해 둔 호텔 바우처와 항공권 e-ticket 그리고 여권, 스마트폰이 있지만 그래도 작은 카메라와 가벼운 렌즈 하나, 평소 보다 이른 시각에 맞춰둔 기상 알람, 미리 챙겨둔 캐리어 가방, 약간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는 공항버스, 간혹 아주 운수 좋은 날 복권처럼 업그레이드 되기도 하는 자리, 일부러 목소리에 특수효과를 넣은 듯 이륙을 알리는 기장의 시크한 안내 방송, 힘찬 제트 엔진 소리, 비행기 바퀴가 지면에서 떨어져 마찰력이 사라질 때의 매끈한 감각,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이코노미석 팔걸이, 긴장감에 항상 살짝 체하듯 하지만 그래도 그리운 기내식, 할 일이 모두 사라져 시간 때우기로 보고 나면 내.. 더보기
SBS 결혼할까요?, Andrea Bocelli - Mai Piu Cosi Lontano 오래전 SBS에서 방영된 ‘결혼할까요?’ 라는 일대일 맟선 프로그램이 꽤 인기였던 적이 있었다. 남녀가 첫 데이트를 마친 후, 남자는 유람선 같은 곳에서 홀로 기다리고, 여자는 상대가 마음에 들었으면 다시 그 장소에 나타나는 방식이었는데 그 설레임과 기다림의 순간에는 항상 지켜보는 이의 마음도 똑같이 설레이게 만드는 안드레아 보첼리의 Mai Piu Cosi Lontano가 흘러 나왔었다. 이 노래의 전주가 흐를 때마다 여전히 가슴이 떨리는 이유는, 상대방의 마음과 내 마음이 동시에 일치했던 그 기적같은 순간을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보기
세 가지 갈림길, 러블리즈 - Destiny 0. Prologue 데스티니는 윤상이 속해 있는 원피스팀이 프로듀싱한 러블리즈의 여러 곡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명곡으로 꼽고 있는 곡이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데스티니의 몇가지 커버 버전들을 원곡과 비교해서 한 번에 들어보는 기회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아 정리해 본다. 1. 러블리즈 원곡우선 윤상 특유의 압도적인 퀄리티를 자랑하는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마이너 진행이 바로 귀에 들어오는 원곡부터 감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후렴구 이후 반음씩 전조되며 고조되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이 곡의 킬링 포인트인데, 이 곡의 놓치기 힘든 매력 중 하나인 이과 감성의 가사도 집중해서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인터넷 상에 넘쳐 나는 이 곡의 가사 분석글을 꼭 한번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참고 링크 : ht.. 더보기
엇갈려야 했던 인연, Bobby Brown - Every Little Step 오늘의 추천곡은 1988년 발표된 바비 브라운의 Every Little Step. 중학교 시절 춤 좀 춘다는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토끼춤을 추곤 했는데, 그 유명했던 토끼춤의 원조가 바로 바비 브라운이었다. 예전부터 트러블 메이커이자 악동으로 유명했던 그는 1992년 R&B 디바인 휘트니 휴스턴과 세기의 결혼을 하게 되지만 결혼 생활 동안 바비 브라운의 폭언과 폭행으로 불화가 매우 심했고, 둘은 꽤 오랜 기간이 지난 2007년에서야 이혼하게 된다. 이후 휘트니 휴스턴은 재기를 꿈꾸었지만 그녀의 삶은 점점 더 빛을 잃어만 갔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R&B 디바였던 그녀는 2012년 파티장에서 코카인 흡입으로 인한 익사사고로 비극적이고 씁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바비 브라운의 경우도 어린 시절부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