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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rock

서태지 - 대경성

내가 서태지의 음악을 무의식 중에 처음 접하게 된 건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창 헤비메탈 장르에 심취해 있던 시절, 해외 밴드 외에도 국내밴드들의 음반도 열심히 찾아 듣게 되었고 그 중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리더인 시나위의 4집 앨범도 있었다. 이 앨범은 시나위가 정통 헤비메탈 스타일의 최고 정점을 추구할 때의 앨범이었는데, 그 당시 보컬리스트는 그 유명한 김종서였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 때의 베이시스트가 서태지였다는 걸 알았다.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다른 멤버들의 영향으로 아주 잠시 힙합으로 외도를 한 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락, 정확히는 헤비메탈을 베이스로 하는 뮤지션이다. 서태지의 위대함은 본인이 담아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음악에 극대화시키는 능력에도 있지만 새로운 장르를 받아들인 후 나오는 결과물의 악마적 디테일에도 있다.

서태지의 솔로 시절 중 개인적인 원픽은 6집(솔로 2집, 타이틀곡 울트라맨이야)의 수록곡 대경성.

그 즈음의 헤비메탈은 얼터너티브 락의 거대한 광풍 앞에 의해 거의 초토화 되어버린 상태였는데, 개인적으로 커트 코베인과 얼터너티브가 추구했던 이상향(락 음악의 정신적 본질로의 회귀)에는 어느 정도 동의했지만 그 동안 락 음악이 쌓아올렸던 정교함과 화려함, 그리고 섹시함을 모두 파괴하고 거세해버린 그 투박한 표현 형식과 방법론이 헤비메탈 골수 팬인 나에게는 오히려 위선적이고 인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미치도록 싫었다.

그렇게 아이러니하게도 락이면서도 자신이 속한 장르의 숨통을 거의 끊어버릴 듯 자기 파멸로 몰아 갔던 얼터너티브 락이 어느덧 시들해지고 뉴 메탈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점차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는데 얼터너티브 락의 몹쓸 영향으로 곡 중간의 화려한 기타 솔로는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트래쉬 메탈을 연상시키는 터프하고 강력한 메인 리프와 야수같은 그로울링 보컬 그리고 전형적인 흑인 음악을 대표하는 랩까지 조화를 이루는 아주 특이한 장르였다. (참고로 락 음악은 흑인 뮤지션이 매우 희귀한 철저히 백인 위주의 장르이다.) 이 장르의 잘 알려진 대표적인 뮤지션은 Linkin Park, Limp Bizkit 등이 있다.

서태지의 솔로 2집 앨범, 그리고 대경성은 그 당시 유행하던 이 뉴메탈 장르의 작법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새로운 장르를 기반으로 자신 만의 메시지를 마치 원래 놀던 물 마냥 쏟아내는 능력도 역시나 서태지 답지만, 첫 시도한 음악의 사운드와 퀄리티와 디테일이 가히 본 고장을 위협할 만한 수준인 것도 놀랍다. 다크하고 육중한 사운드의 메인 리프, 그리고 마치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예언하는 듯한 중간 부분의 가사 라임은 지금 보아도 시대 초월적이다.

서태지 - 울트라맨이야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