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고 싶었다. 정말 그 생각 뿐이었다.
대학교 2학년까지의 성적은 학사 경고까지는 아니었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르지 못할 것도 없는 지경이었다. 어설픈 해방감과 무력감이 결합된 대학 생활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학교로 오고 가는 길마다 고민이 끊이지 않았고 당연히 제대로 된 연애는 커녕 그 쪽으로도 늘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잠시 쉬기로. 바로 군대에서.
군대에 다녀 온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안다.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를.
여자들과의 대화 중 군대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는 금기어이며, 특히 둘의 조합은 그야말로 금기 중 금기어이다. 그럼에도 내가 주변의 기혼인 여성 동료들에게 군대에 대하여 그럭저럭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할 때 드는 한가지 예시가 있다. 어느날 갑자기 대략 시어머니 20명 정도가 한꺼번에 내 앞에 나타나 휴일, 주말도 없이 늘 같은 공간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꼬투리를 잡기 위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상황이 반복되는 거라고.
그렇게 뭣도 모르고 입대한 나는 1996년도 여름, 마침 하필이면 전쟁이 터졌던 6.25 날 강원도 전방에 위치한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한달 좀 넘게 훈련을 받았고 이후 그 지역 인근의 부대로 배치 받았다.
체력은 약한 편이었으나 신병 교육 때의 화생방, 각개전투, 40키로 행군 등은 지나면 그 때 뿐인 것이라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군생활의 꽃은 내가 앞으로 계속 지내게 될 부대를 배치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자대 배치 첫날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한 고참이 내 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 ‘씨발 새끼야. 넌 이제 뒤졌어.’ 라고. 그리고 또 다른 고참은 내게 말했다. ‘내가 앞으로 잘해줄께.’라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찰진 욕을 하며 격한 환영을 보여준 고참은 알고 보니 표현만 거칠 뿐 온기 넘치는 사람이었고, 막상 내게 잘해 주겠다던 고참은 이후 점차 악마의 이빨을 드러냈다.
사실 이 날 내가 들었던 욕은 내가 앞으로 처먹을 창의적이기까지한 욕들에 비하면 애교 수준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게 내 군 생활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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