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나의 군생활은 어떤 면에서는 괜찮았고 어느 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저질 체력이다 보니 체력이 필요한 훈련 도중 남들보다 뒤쳐져서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반면 내 주특기였던 일반 행정 업무쪽으로는 조금 소질이 있어서, 한창 때는 인근 부대 및 상급 부대 내에서 보고서를 가장 빠르게 잘 만드는 병사로 어느덧 소문이 나 있었다.
사실 군대에서 일을 잘하는 요령은 별 것이 없었다. 좀 지나 보니 반복되는 업무 패턴들이 보였고, 특정한 시기가 도래할 때마다 반드시 작성되어야 할 보고서의 초안을 간부들의 책상에 말없이 미리 올려 두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약간의 첨삭을 거쳐 부대 내 최상급자에게 보고되곤 했다.
손이 빠르다는 평판 덕분인지 장교나 하사관 등 간부들 대부분 나를 좋아했고 인간적으로도 꽤 잘 대해 주었다. 특히 이전 부서에서는 여차하면 재떨이 던지는 걸로 유명했던 새 인사과장도 내가 제대할 즈음에는 같이 근무하는 동안 많이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나를 아껴 준 몇몇을 제외한 그들의 호의에 공짜는 없었다. 내가 속한 인사 외에도 정보, 작전, 군수, 수송, 통신, 본부 행정 등 수많은 부서의 간부들이 내게 몰려와 문서 작성을 부탁했고, 나는 밤을 새가며 그 문서들을 만들어 내야 했다. 물론 내무반에서 고참들에게 시달리는 시간보다는 그래도 훨씬 나았기에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병사들이 일상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끝판왕 행정보급관 마저도 나와는 관계가 꽤 좋았다. 덕분에 보통 남들은 군생활 중 한번 정도 받는 부대 표창을 3번이나 받았고 보상으로 꿀같은 포상휴가도 따라 왔다. 하지만 행정보급관에게 늘 야단을 맞아 컴플렉스가 심했던 한 인간의 시기와 질투를 잠 깨운 것은 의도치 못한 결과였다. 사실 그는 나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악당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를 아주 특별 대우해 주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첫날 내게 잘해 주겠다던 그 고참이었다.
결국 그가 제대할 때까지 내게는 한동안 사악한 그림자가 드리워 지게 된다. 전문 군사 용어로 말하자면 한마디로 군생활 더럽게 꼬이게 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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