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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수술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내게 물었다. “너 뭐 갖고 싶은 거 있니?” 라고. 그 때 진작 눈치 깠어야 했다. ‘인생에 공짜는 아무 것도 없다.’ 라는 그 오랜 진리를.

순진했던 나는 평소에 갖고 싶던 초합금 로봇을 말했고 돌이킬 수 없는 거래는 바로 체결되었다. 어느 날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고래를 잘 잡기로 유명한 동네 피부비뇨기과에 끌려 갔고 순식간에 수술대 위에 바지를 내리고 누워 있었다.

외간 남녀들의 서걱 서걱한 가위 질 소리와 나의 오랜 동정(?)은 마침내 초합금 로봇으로 맞 바꾸어 졌다. 수술을 마친 후 수술 부위에는 종이컵이 끼워져 있었고 이후 서서히 마취가 풀려 가며 깨달았다. 고결한 정신 대신 물질을 택한 댓가는 참으로 혹독하다는 것을...

진통제를 먹어도 문득 문득 찾아오는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에 신음하는 동안 초합금 로봇이 초라하지만 멋진 자태를 뽐내며 나를 노려 보았다. 하지만 몇 주의 시간이 지나 상처는 모두 아물었고 더 이상 수치스러운 종이컵 따위를 나의 신체 일부분에 매달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고 마치 할례 의식을 마친 유대인들처럼 성스러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때 떠나 보낸 내 살들아, 잘 지내지? 그 때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나는 여전히 잘 못 지내지만 그래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Photo by Erik Mclean, Pexels, https://www.pexels.com/ko-kr/photo/546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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