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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rock

Architects - Animals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편의점에서 사온 컵라면을 뜯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투입되었던 프로젝트의 어떠한 사정 덕분에 저녁을 챙기지 못한 그날은 마침 생일날이었다. 평소에 그런 것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으니 그다지 아쉬울 건 없었다. 어쨌든 허기를 채워야 하므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잠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10년전 나는 그렇게 여기저기 프로젝트를 떠도는 소프트웨어 아키텍트였다. 프로젝트를 철수한 후 별다른 예정이 없어 다음주는 본사로 출근해야하나 싶으면 일요일밤 늦은 즈음에 팀장에게 지령이 왔다. ‘너는 월요일부터 어디에 있는 어느 프로젝트로 가면 된다.’라고.

그렇게 몇년을 살았지만 사실 내가 다른 아키텍트들만큼 고생했다고 딱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 나는 적당히 비겁했고 또 제법 이기적이어서 남들을 챙기지 않고 오직 나만 생각하면서 일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훌륭한 아키텍트들에게 혹독한 고난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몸과 정신이 갈려나간 어떤 이들은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늘 원래 계획된 일정을 마치고 캍같이 복귀하니 팀장은 일을 제법 잘한다고 칭찬했고 마치 스타워즈의 마스터 제다이처럼 새로 온 친구들을 가르치라며 부사수로 붙여 주곤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재능의 한계를 느꼈다. 가끔씩 진짜 엔지니어들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난 본투비 엔지니어는 아니구나.’라는 냉정한 현실을 자각하게 되면서 알량한 우쭐함이 곤두박질쳤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진로를 조금 비틀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내 직무는 여전히 아키텍트이다. 몇년 전에는 한 번의 실수로 남이 작업한 영역을 통째로 날려 먹기도 하는 좌충우돌 부류이긴 하지만.

유튜브를 보던 어느 날 추천 목록에 ‘Architects’라는 밴드의 곡이 뜨니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익숙해서 무감각할 뿐 사실 메탈밴드명으로서의 ‘Architects’는 제법 그럴싸한 이름이다. 이들의 ‘Animals’ 한 곡을 듣고 범상치가 않아서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 ‘For Those That Wish To Exist’의 전체 음원을 샀다. 그리고 아직도 아키텍트를 계속하고 있는 친구에게 영상을 공유해주며 실없는 농을 건넸다.

이건 ‘우리를 위한 팀’이라고.

Architects - For Those That Wish To Exist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