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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는 있다.

‘너 그거 알아?’

라고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그 나이에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뭐?’

‘크리스마스마다 선물 준 산타 할아버지가 OO였다는거?’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는 그 순간은 의외로 별 동요없이 무덤덤했다. 하지만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향하던 순간부터 마음 속의 물결이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소중했던 존재가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져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느낌. 아마도 그게 첫 이별이었나 보다.


얼마 전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 산타 할아버지 진짜 있는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산타의 마지막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꼈다. 조만간 그가 진실을 알아차리게 되면 나도 곧 은퇴식을 준비해야 하겠지.

하지만 며칠 후 선물을 받고 기뻐할 이가 지금으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마치 지금의 나처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새벽에 졸린 눈을 부비며 선물을 포장하고 있을테니.

산타는 있다.

이미지 출처: Pexels, Matthias Cooper 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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