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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k-pop

완벽한 하루, 김동률 - 아이처럼

햇살이 따뜻한 보통의 봄날이었다.

그녀의 집인 상도동을 상계동으로 잘 못 알아들은 나는, 나름의 배려를 해준답시고 집과는 전혀 거리가 먼 대학로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고는 30분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 오래간만인 대학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 즈음이 되어서 막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대학로 거리를 가로지르며 걸어 가던 그 순간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브라운 투피스를 입고 옷 색깔에 맞춘 눈 화장을 하고는 입술을 살짝 비쭉거리며 쨍한 햇살을 비집고 그녀가 내 쪽으로 걸어오던 순간을.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그녀는 별것 아닌 내 이야기에도 큰 눈을 반짝거리며 크게 웃어 주었고, 데이트를 마친 후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는 동안 보통의 하루였던 그날은 완벽한 하루로 바뀌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고 나서 잘 들어갔는지 안부를 묻는 카카오톡을 보냈는데 메시지 옆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1이라는 숫자. 이상했다. 분명 모든게 완벽했는데... 나만 홀로 받은 느낌은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아쉽지만 그래도 나만의 착각이었겠거니 깔끔하게 마음을 비워내자고 결심한 다음날, 얼핏보아도 허겁지겁한 뉘앙스로 답장이 왔다. 집 무선 공유기가 고장나서 내가 보낸 카톡을 못받았다고. 김씨였던 그녀는 나중에 주선자에게 내가 어디 김씨냐고 살짝 물어 보았다고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소나기 같은 연애를 시작했고, 마침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던 그 해 여름날 아주 작은 우산을 함께 나눠 쓰며 한쪽 어깨가 흠뻑 젖도록 삼청동의 비좁은 거리를 참 많이도 거닐었다.

그리고 한동안 구석에 우두커니 서있던 기타를 꺼내 연습했던 이 노래로 나는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늦은 가을날 상가 건물 2층에 위치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누군가 내게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결혼하겠냐고 몯는다면 Yes or No 라는 대답보다는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시간을 거슬러 그 대학로길을 걷게 된다면, 찬란하게 햇살이 비치던 거리의 초입으로 다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될 거라고.

김동률 - Monologue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