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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k-pop

걸 크러쉬 대전 - BLACKPINK, ITZY, (G)I-DLE, Rocket Punch

 

BLACKPINK - How you like that (2020), ITZY - NOT SHY (2020), [G]I-DLE - I TRUSH (2020), Rocket Punch - RED PUNCH (2020)

0. Prologue
최근 K-Pop 걸그룹의 추세를 보면 걸 크러쉬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K-Pop에서의 걸 크러쉬라는 용어는 특정 장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장르 구분의 기준점이라기 보다는 팀이 추구하고자 하는 컨셉추얼한 이미지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보이그룹은 여성팬, 반대로 걸그룹은 남성팬이 주류를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걸 크러쉬를 대표하는 YG 출신의 걸그룹 2NE1이 여성이 가진 시크함과 멋짐(또는 멋쁨)의 이미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면서 대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를 기점으로 걸그룹에 대한 여성 팬덤이 대규모로 유입되게 된다.

오늘 포스트에서 소개할 네 개의 팀은 모두 올해에 걸 크러쉬 컨셉의 곡을 발표한 팀들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관심도에 따라 선곡되어 있다.

1. BLACKPINK - How You Like That
YG는 2NE1의 대성공을 통해 이미 걸 크러쉬의 명문가와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 2NE1의 적통 계보를 잇는 블랙핑크는 원조 걸 크러쉬의 포스란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팀이다. 블랙핑크가 속해 있는 YG는 흑인 음악 중에서도 힙합 성향이 강한 편인데, 블랙핑크가 보여주는 압도적이고 원초적인 빡셈(또는 강력함)은 힙합이 지니고 있는 장르적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특이하게도 리더가 따로 없는 팀 구성을 가져가고 있는데, 오늘 소개되는 네 개의 팀 중에서도 전체 멤버들의 포스, 아우라나 세련미, 걸 크러쉬 컨셉의 소화 능력 및 음악적인 강렬함은 가장 압도적인 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How You Like That’ 뮤직 비디오에 압축되어 있는 신화적 메시지나 디테일을 볼 때, 역시나 국내 3대 메이저 다운 레벨을 자랑하고 있다. 게다가 이 앨범의 아트웍은 과거 락의 명반에서나 볼 수 있는 포스마저 느껴진다. 역대 아이돌 팀의 시그니처 사운드중 가장 멋지다고 생각되는 ‘Black Pink In Your Area’가 들리자마자 고조되는 기대와 긴장감은 타 팀에서는 찾기 힘든 매력. 이 앨범을 통해 2NE1의 포스를 이미 넘어섰다고 보여진다.

2. ITZY - NOT SHY
ITZY가 속한 JYP는 사실 걸 크러쉬 컨셉을 주도하던 곳은 아니다. 트와이스의 경우도 씩씩한 느낌 정도는 있지만 아직까지 상큼하고 발랄한 컨셉을 메인으로 가져가고 있는 팀이고 걸 크러쉬와는 거리감이 좀 있는 편이다.

반면 ITZY는 데뷔곡인 ‘달라 달라’에서부터 본격적인 걸 크러쉬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는데, 힙합 성향의 YG와 달리 JYP는 흑인 음악 중에서도 R&B 나 Soul 성향이 강한 편이기도 하고 동일한 걸 크러쉬 컨셉을 추구하더라도 음악적 결과물이나 구현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걸 크러쉬 컨셉을 메인 테마로 사용하되 YG 대비 전반적으로 톤 다운시킨 느낌을 주면서 그 외에 큐티함과 루키다운 신선함 등 다양한 이미지를 덧 대어서 좀 더 대중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게다가 K팝 스타 시절부터 이미 기존 아이돌을 압도하는 댄스 재능으로 유명했던 채령이 속한 팀이다보니 퍼모먼스 측면에서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ITZY의 최근 곡인 ‘NOT SHY’는 데뷔곡 ‘달라 달라’보다 한층 더 걸 크러쉬 컨셉을 강화한 느낌이다. 도입부와 후렴에서 테마처럼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색소폰 사운드가 매력적인 곡인데, 뮤직 비디오에서 서부의 은행 강도 같은 터프한 이미지를 메인으로 끌고 가고 있지만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에서 멤버들의 큐티한 모습을 녹여 낸 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게 센 컨셉을 유지하는 블랙핑크와는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3. (G)I-DLE - Oh my god
CUBE 소속인 (G)I-DLE은 같은 걸 크러쉬라도 다른 팀과 전혀 다른 작법을 취하고 있다. 주류인 흑인 음악 계열이 아니라 라틴 계열 리듬을 가져다 쓰기도 하고, 아이돌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방가르드하면서도 가장 다크한 느낌의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이렇게 극도의 차별화되는 팀 컬러의 중심에는 팀 컨셉의 메인 디렉터이자 작곡까지 담당하는 천재 리더인 소연의 영향력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소연은 같은 팀의 메인 보컬인 미연과 함께 세계적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월드 챔피언쉽을 위한 프로젝트 그룹 K/DA의 POP/STARS라는 곡에 래퍼 캐릭터 아칼리로 참여했는데, 그 당시 보여준 타 멤버를 압살하는 존재감으로 인해 리그 오즈 레전드 팬들에게는 가히 아칼리의 현신이자 여신급으로 추앙받고 있다. 참고로 원래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서양 팬들은 K-Pop에 크게 관심이 없거나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해외에서 바라보는 걸 크러쉬 K-Pop 이미지를 아주 제대로 뇌리에 꽂아 넣어 버린지라 K/DA의 POP/STARS를 듣고 ‘난 K-Pop 팬도 아니었는데 이 노래는 미쳤다.’며 입덕한 경우가 꽤 있다.

올해 발표된 ‘Oh my god’은 메인 주제가 되는 후렴부분에서 오히려 BPM을 급격히 떨어 뜨리면서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 아주 독특한 작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아이돌계에서 흔치 않은 중저역대 보컬인 우기의 보이스도 이 곡의 암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이끄는데 일조하고 있다. 뮤직 비디오의 이미지는 아마도 전체 관람가 등급을 위해 주변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어느 선까지 넘었을 지 모를 정도로 꽤나 불경(?)하고 음산한 컨셉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의도적으로 과하게 모션 블러 처리되어 빠르게 지나가는, 날카로운 철조망을 피 묻은 혀로 핥는 듯한 장면은 이펙트 적용 전의 장면이 심히 궁금할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락에서 주로 느껴지던 경계선 근처의 매우 아슬아슬한 긴장감(좋은 의미로) 느껴지는 팀이다. 다만 뮤직 비디오의 퀄리티가 팀이 추구하는 컨셉이 필요로 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무시무시한 매너와 달리 무대 뒤 일상에서 보여주는 순수함과의 어마어마한 갭 차이가 매력인 팀으로, 이 곡 이후 올 여름에 발표된 ‘덤디 덤디’라는 곡에서는 잠시 기존에 보여준 강한 컨셉을 접어 두고 계절에 어울리는 밝고 귀여운 컨셉으로 활동하였다.

4. Rocket Punch - BOUNCY
러블리즈가 속한 woollim 산하의 로켓펀치는 소속사가 이제 우리도 남들 하는 것 제대로 다 해보자는 느낌으로 만든 듯한 팀이다. 앨범 자켓 이미지가 항상 일관적인 컨셉을 유지하고 있는데, 걸 크러쉬한 요소를 일부 차용하면서도 상큼하고 톡톡튀는 이미지를 메인 베이스로 가져 가려는 듯 하다. 오늘 소개된 팀들 중에서는 걸 크러쉬의 농도가 비교적 절제된 편이다.

팀의 데뷔곡인 ‘빔밤붐’에서는 여름에 잘 어울리는 트로피컬 하우스 사운드와 함께 상큼하고 씩씩한 분위기를 보여 줬다면, 2번째 앨범 타이틀곡인 ‘BOUNCY’ 부터 본격적인 걸 크러쉬 컨셉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곡의 공식 커멘트 상의 장르도 ‘틴 크러쉬’라는 생전 처음 듣는 표현을 들고 나왔는데, 아마도 십대들이 선망하는 걸 크러쉬 이미지를 표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규모에 비해 캐스팅, 팀 관리나 칼군무, 곡 퀄리티가 좋은 소속사인지라 로켓펀치의 ‘BOUNCY’도 믿고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뮤직 비디오 전반적으로 화려한 컬러를 주로 사용해서 산뜻한 이미지를 어필하고 있고, 걸 크러쉬 특유의 파워풀한 느낌을 주면서도 대번에 귀에 감겨오는 키치한 멜로디와 신스 팝의 명가다운 사운드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소속사 특성상 YG나 JYP의 팀처럼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주목을 끌기는 어렵기 때문에 오마이걸이나 (G)I-DLE이 퀸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규모 팬덤을 확보했듯이, 팀의 매력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입덕 포인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ITZY-sh 하다는 평도 일부 있어서 차별화 포인트에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오늘 소개된 팀 중에서는 가장 막내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 팀이 선보일 음악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최근에 발표된 ‘JUICY’에서는 다시 여름 분위기에 걸맞는 귀여운 컨셉으로 활동하고 있다.


5. Epilogue
전통적으로 남성 팬덤보다 여성 팬덤이 더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기존의 남성 팬덤에 여성 팬덤이 더해짐으로써 성별을 가리지 않고 훨씬 더 폭 넓은 대중성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최근 걸그룹이 추구하는 걸 크러쉬 컨셉에는 압도적인 메리트가 존재한다. 당연히 엔터테인먼트사도 이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으므로 전면에 내세우던지 살짝 은연중이던지 걸 크러쉬 컨셉을 추구하는데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반면 보이그룹은 아무래도 남성팬들이 입덕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여성 팬덤 위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게다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멋짐의 이미지를 걸그룹이 나눠 가지게 되어 버렸다. 그 결과 현재 압도적인 위상을 지니게 된 BTS를 제외하면 새로 눈에 띄는 팀이 좀처럼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걸그룹 중심의 쏠림 현상은 아마도 대중들이 슬슬 걸 크러쉬 컨셉에 피로감을 보이는 시점이 오기 전까지는 한동안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