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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Vaio GR PCG-GR5E/BP

대학 졸업 전에 iMac G3를 처분하고 회사에 취업한 이후부터 그동안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맥과의 인연은 잠시 끊기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생애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인 Windows 노트북을 구입하게 된다. 하지만 애플 기종만 계속 써왔던지라 사실 왠만한 디자인의 노트북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 당시 개인적으로 고려해 볼만한 옵션은 크게 두가지였다. 바로 튼튼한 내구성과 함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보수 정통파 느낌의 IBM ThinkPad, 그리고 디자인에 죽고 사는 진보 혁신파 SONY Vaio 노트북이었다.

지금은 SONY의 위세가 엄청나게 줄었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SONY는 Palm기반 PDA인 Clie(현 클리앙 사이트를 탄생시킨 제품) 등 혁신의 아이콘으로 기세등등한 시절이었고, 심지어 스티브 잡스 마저도 SONY의 Vaio 노트북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다소 투박하지만 신뢰감있는 IBM ThinkPad의 디자인보다는 세련된 SONY Vaio 노트북 쪽이 아무래도 개인적인 취향에 훨씬 더 끌렸기에 SONY의 Vaio GR PCG-GR5E/BP라는 일본 내수 모델을 구입하게 된다.

GR5E/BP의 스펙은 그 당시 노트북 기준으로 꽤 좋은 편이었다. CPU로는 펜티엄 3의 마지막 세대인 투알라인 CPU를 탑재해서 뻥클럭으로 유명했던 펜티엄 4 대비 동일 클럭 기준 성능이 오히려 더 좋았다. 그리고 14인치 LCD 화질이 특히 쨍하고 좋았는데 그 당시 1024x768 해상도가 일반적이던 시절에 무려 1400x1050이라는 고해상도를 지원했었다. 256메가 메모리에 기본 하드 디스크는 30기가 정도였지만 그 시절 기준으로는 그 정도면 넉넉한 편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기본 탑재 OS로는 Windows XP가 지원되었다. 회사에서 개발 업무용으로 잠시 사용하면서 EJB 빌드나 WebLogic 서버 구동 등 좀 무거운 작업들을 자주 돌렸을 때에도 성능이나 안정성면에서 별다른 문제나 불만은 없었다.

터치패드 하단에는 Vaio의 트레이드 마크인 조그 다이얼이 추가되어 있었는데, 다이얼을 통해 여러가지 멀티미디어 관련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막상 그다지 유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심플하게 상하 스크롤 휠로만 세팅해서 사용했었다.

다만 국내에 정식 발매된 모델이 아니다보니 키보드 자판 및 배열이 일본어 자판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그래서 문구점에서 파는 한글 자판 스티커를 자판 위에 붙이고 키 배열도 최대한 한글 키보드에 맞게 레지스트리를 매핑해서 사용해야 했다. 타이핑 습관이 오로지 왼쪽 쉬프트키만 사용하는 편이라, 개인적으로 큰 불편은 못느꼈지만 만약 오른쪽 쉬프트키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사실 굉장히 불편할만한 독특한 키배열이었다.

메인 노트북이었던 시절과 서브 노트북이었던 시절을 포함해서 거의 10년 넘게 사용했는데 그 시절 SONY 제품들이 대체로 그랬지만 특유의 SONY 타이머가 있어서 역시나 내구성은 좋지 않았다. 수년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다보니 왼쪽 힌지 부분을 고정하는 하단 본체의  프라스틱이 깨져 나가면서 나중에는 거의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프라스틱 질감이 IBM ThinkPad 같은 고강도 프라스틱이 아니라 심하게 말하면 프라모델 느낌나는 연약한 재질이었다. 이 정도면 사실 결함 수준이라 요즘 메이저 브랜드 노트북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내구성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저런 문제점에도 애플 급의 디자인 포스를 풍기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Vaio는 가세가 기운 SONY가 결국 2013년도에 PC 사업과 Vaio 브랜드를 모두 매각하기로 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데 특유의 매혹적인 보라빛 컬러와 세련되고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독보적인 아우라를 뽐내던 Vaio 같은 느낌(정확히는 모노츠쿠리)의 브랜드는 요즘 Windows PC 업계에서는 사실 찾아보기가 힘들다.

SONY Vaio GR PCG-GR5E/BP, Official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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