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ideo

Top Gun - Take My Breath Away, Berlin 하도 오래전 일이라 주말의 명화였는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것인지 가물가물하지만,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앉아 함께 Top Gun을 보던 순간은 쉽게 잊을 수 없다. 남여 주인공이 서로 마주치며 Berlin의 Take My Breath Away이 끈적하게 흘러 나오는 순간 바로 느낌이 왔다. 이것은 베드신의 시작이라는 것을. 금기된 것을 이미 알아버린 아이들은 내심 매버릭(탐 크루즈)과 찰리(켈리 맥길리스)를 응원(?)하면서도, 언제 어른들이 헛기침과 함께 채널을 돌려 버리거나 테잎을 빨리 감아댈 지 모르기 때문에 어느 편도 들 수 없는 난감한 지경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들의 설왕설래와 함께 한껏 고조되어 가는 분위기 속에서 어른들은 리모콘을 손에 쥐고 버튼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 더보기
‘비열한 거리’의 레퀴엠, Alan Parsons Project - Old and Wise 영화 비열한 거리(2006)에서 마지막 씬을 장식하며 주인공 병두(조인성)를 위한 레퀴엠처럼 울려 퍼지는 Alan Parsons Project의 Old and Wise. 친구를 배신한 자(민호, 남궁민), 자신의 보스를 제거한 자(종수, 진구), 이 모든 것을 계획한 자(황회장, 천호진)의 씁쓸한 삼중주가 이 마지막 장면에 펼쳐진다. 조인성의 어색하고도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연기가 내내 작품을 위태롭게 만들지만, 결말의 아이러니한 비극을 비꼬는 듯한 Old and Wise 가사(죽음의 강을 건너고 있는 나이 든 현자가 옛 친구와의 우정을 절대자 앞에서 기억하는 내용)와의 극적인 대비는 이 영화의 모든 단점을 덮고 전체적인 인상을 압도해 버린다. 더보기
떠나는 이들을 위한 마지막 인사, 굿’ 바이 (원제 : おくりびと) 그다지 조숙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3~4학년 즈음 죽음에 대해 깊이 상상에 빠진 적이 있었다. 육신이 소멸되고 시커먼 심연 속에 영혼이 마침내 가라앉고 나면, 그 주변에는 어떤 존재의 인기척도 남아 있지 않아서 오로지 내 영혼만 남아 고독하고 절대적인 영원의 시간에 갇힌 것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막막하고도 갑갑한 감각이었다. 타인과 죽음의 여정을 나누는 장례라는 절차는 사실 철저하게 살아 남은 자들을 위한 위로의 의식이다. 이별의 끝이 아닌 이별의 시작이며 남은 자들은 때로는 형식적이면서 경건하기까지한 이 떠나 보냄의 과정을 통해 떠나간 이와의 추억들을 최대한 선명하게 각인하고, 흐르는 시간 속에 그 기억의 얼룩을 조금씩 헹구어 나간다. 일본 영화 굿’ 바이는 유명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던 주.. 더보기
장화, 홍련 - 돌이킬 수 없는 걸음, 이병우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병우의 영화음악 한 곡 추천.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꼽은 한국의 영화감독 3인(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중 한 명인 김지운 감독의 2003년작인 장화, 홍련은 김지운 감독 뿐만 아니라 이병우 음악감독에게도 분기점이 되어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에필로그에서 흘러 나오는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은 장르상 공포 영화에 속한 이 영화가 지닌 비극적 슬픔이라는 메인 주제를 관통하는 곡으로, 이병우의 여러 영화음악 작업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곡. 더보기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이병우 오늘은 개인적으로 아끼는 영화음악 한곡 추천. 배용준과 이미숙, 전도연이 함께 출연했던 2003년작 스캔들은 지금 봐도 꽤 야한 축에 속하는 19금 작품인데, 이걸 왜 굳이 회사 동료들과 같이 영화관에서 보았는지 의문이다. 아무튼 동료들과 나란히 앉아서 침 삼키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면서 은근히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겨울연가로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욘사마 배용준의 연기를 보기 위해 한국행 티켓을 끊은 일본 팬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순정남 욘사마가 천하의 바람둥이와 호색한으로 등장해 버리니. 이 작품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더라도 미장센이 독특하다거나 영화 음악이 끌린다거나 하는 것처럼 무언가 한가지 꽂히는 요소를 확인하면 .. 더보기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아무래도 영화광이 아니다보니 영화 한편에 대해 길게 쓸 만한 재주는 없지만, 내 기억에 강하게 여운이 남은 추천 영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내용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영화 내내 무장이 완전히 해제된 상태로 마음을 풀어 헤치고 있다가 마지막 즈음에 갑자기 누군가에게 복부를 세게 가격당했을 때처럼 숨이 한동안 턱 막히던 기억을 준 작품. 더보기
호텔 델루나 생과 사의 경계선에 위치한, 삶이 다한 망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 호텔 델루나. 그 곳의 사장 장만월(이지은)은 과거에서의 깊은 한으로 인해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달의 객잔(호텔 델루나)의 주인을 맡고 있는 신비로운 존재이다. 이 드라마는 기존 로맨스물의 전형적인 남녀 역할과는 상반된 캐틱터를 그려내고 있는데, 장만월은 기존 로맨스물에서 흔히 보여지던 여주 이미지와 달리 절대자인 신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살아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악귀까지 순식간에 골로 보내버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툭하면 아무에게나 '너, 저승 버스 타고 저승가고 싶어?'라는 협박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괴팍하고 심술궂은 성격의 소유자인데, 그게 빈 말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 무.. 더보기
관상 배우 이정재의 연기 캐리어에서 그의 터닝 포인트는 어떤 작품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그 지점이 영화 관상에서의 수양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전까지 관객들이 기대하던 스크린에서의 이정재의 모습이란 분명 그의 외모와 이미지에 최소 8할 이상의 뿌리를 둔 것이었고, 덕분에 그 이미지에 부합하는 역할이 주어졌을 때에는 마치 깔맞춤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에 본인도 어느 정도 안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영화 관상에서는 자신의 권력욕을 막아서는 그 어떠한 장애물(심지어 핏줄까지 포함하여)조차 용납하지 않는 수양대군으로 변신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왕족으로써의 위엄이 묻어나지만 그 힘과 권위로 상대를 위협하는 듯한 발성과 말투', '욕망과.. 더보기